카테고리 없음

[도서리뷰] 축복받은 집 / 줌파 라히리 (서창렬 옮김)

혜랑랑 2024. 4. 9. 12:04
반응형

안녕하세요. 간만입니다. 
2월도 벌써 절반이 지났고 점점 3월 새학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이 시기가 누군가에게는 가장 바쁘기도, 반대로 누군가에게는 한가하기도 할텐데요. 새 시작을 준비하는 시기인 만큼 걱정도 되지만 조금은 들뜨는 것 같습니다.


 
오늘 가져온 택은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입니다.

이 책은 총 9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야기들 사이에는 연결성이 없는 옴니버스식 전개를 취하고 있습니다. 9편의 이야기를 모두 리뷰하기는 힘들어 인상깊은 에피소드를 몇 개 골라 집중적으로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일시적인 문제'입니다.
 
 여기서 일시적인 문제는 아파트의 정전 문제라고 언급되었지만 사실상 진짜 문제는 쇼바와 슈쿠마 부부와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사이 좋은 부부였고 쇼바는 곧 출산을 임산부였습니다. 쇼바는 예상보다 빠른 진통에 학술 대회로 출장간 슈쿠마가 부재중일 때 병원으로 향했으나 아이는 사산되었고 쇼바는 아이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채 갓 태어난 아기와 이별해야만 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계획적이고 깔끔했던 쇼바는 무기력해졌고 슈쿠마는 그런 쇼바의 마음을 돌리려 노력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저 일시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해결될 수 없는 숙제라고 생각하기도 하며 불편한 나날들이 계속되었지만 부부 중 누구도 아기의 일을 섣불리 입에 담지는 못했습니다.
 
 아파트의 공지대로 며칠간 저녁 8시경 한시간정도 불이 정전되었고 이때 쇼바 부부는 자신이 숨겼던 비밀을 하나씩 말해주는 특별한 게임을 하기로 합니다. 게임이 계속 되고 어느새 정전일도 마지막날이 되었을 때, 슈쿠마는 쇼바에게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쇼바가 출산하던 날, 슈쿠마는 뒤늦게 병원에 도착했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후였습니다. 그러나 슈쿠마는 의사로부터 사산된 아이를 안아볼 것을 제안받았고 그것을 받아들여 이미 숨이 끊어진 아이를 한번 안아보았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그리고 이어 쇼바는 몰랐던 아이의 성별을 알려줍니다. 그제서야 부부는 함께 울며 아이를 잃은 슬픔을 나누었고 그날 밤 함께 잠들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를 읽으며 정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슬픔을 다룬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아이가 사산되고 쇼바는 슬퍼하기보다는 애써 괜찮은척하며 일상을 이어나가려고 했는데요, 그런 쇼바의 모습에서 슈쿠마는 평소와 다른 특이점들을 느낍니다. 준비성이 철저한 쇼바가 정전을 대비한 촛불 하나 사두지 않았다는 부분에서처럼 말입니다. 흔히 큰 슬픔을 겪으면 사람이 무너지고 큰 좌절감에 빠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슬픔을 맞이하면 오히려 슬픔을 겪기 이전처럼 생활하려고 하고 그 일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리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마치 본인의 인생에 그 슬픔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생각합니다.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드러내는것조차 더 큰 상처일까봐 숨기고 사건 자체를 없었던 일로 만들어버리는 것으로 슬픔을 극복하는 한가지 방법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품에서도 그랬든 슬픔은 은폐하고 외면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외면하면 오히려 마음에 더 큰 짐이 되고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슬픔은 나의 너무나도 깊은 곳으로 내려가버려 다시 끄집어낼수 없지만 그래서 제거할수도 없는 존재로 남게 되기 때문입니다. 슬픔을 완전히 제거할수는 없지만 그것이 우리 마음속에 계속 남아 고름처럼 우리를 괴롭히는 존재가 아닌 한편의 경험이자 발돋음으로 남기려면 우리는 그 슬픔을 들여다보고 챙겨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에서의 쇼바 또한 슬픔을 모른척하려 했지만 무의식중에서는 정전의 암흑에서 게임을 계속하자는 것과 같이 슬픔을 드러내고 싶었고, 결국 그것을 드러내며 상처받았지만 상처가 났기에 아물 수 있음을 암시하게도 했습니다. 상처는 언젠가 아물고 어떤 상처는 너무 크고 아파서 흉터를 남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옅어지고 덮혀지고 결국에는 잊혀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작품을 읽으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진찌 경비원'은 네 번째 에피소드로 주인공 부리 마의 이야기입니다. 부리 마는 마을의 계단 청소부로 마을에 상주하며 가끔 마을에서 횡포를 부리는 사람들을 내쫒기도, 도둑을 잡기도 하며 경비원 격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부리 마는 가끔 허언을 하고 떠돌이 생활을 했으며 조금 괴팍한 경향이 있지만 사람들은 마을의 치안을 지켜주는 부리 마를 좋아했고 경비원으로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마을에서 도둑질 사건이 벌어지고 일꾼들이 드나들며 마을 분위기가 뒤숭숭해지자 부리 마를 경비원이라고 좋아해주었던 사람들은 한순간에 태도를 바꾸어 부리마를 거짓말쟁이에 도둑으로 몰았고 부리마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아무도 부리 마의 말을 믿어주지 않은 채 마을에서 쫒겨나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부리 마를 보며 우리 마을에는 진짜 경비원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그녀를 조롱합니다.
 
 이 작품은 사람들의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처음 부리마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자 곧바로 도둑에 배신자로 몰리게 됩니다.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때면 호의를 보이다가도 조금이라도 피해가 돌아온다면 싸늘한 눈초리를 보내며 '그럴 줄 알았다'라는 태도를 취합니다. 이것은 현대 각박해진 사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세태이며 다수의 문화에서 소수가 받을 수 있는 편견 같기도 차별같기도 합니다. 실제 '축복받은 집'에서는 이민자의 내용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요. 그들에 대한 직접적 차별보다는 고향을 떠나온 이민자의 향수, 종교적 불일치, 문화적 부적응의 내용을 많이 담고 있지만 '진짜 경비원' 에피소드만큼은 약자 혹은 타인에 대한 직접적인 편견을 드러내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일곱 번째 에피소드이자 이 책의 제목인 '축복받은 집'입니다. 한 인도인 부부는 결혼을 한 뒤 타지에서 신혼집을 꾸리게 되는데요, 힌두교인 그들은 집에서 기독교 물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독교 포스터, 석상, 조각 등 다양한 기독교 물품들이 집안 곳곳에 숨겨져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남편 산지브는 기독교 물건들을 버리자고 하지만 아내 트윙클은 기독교 물건들이 예쁘다며 집안 전시해 둘것을 고집합니다. 더불어 트윙클은 기독교 물품이 넘쳐나는 이 집을 축복받은 집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산지브는 힌두교인 자신들이 기독교로 오해받는 상황이 싫고 그렇기에 기독교 물품들이 집에 있는 것을 더더욱 꺼립니다. 이런 산지브의 바람과는 달리 트윙클은 점점 더 많은 물품들을 찾아 집에 전시하기 시작하고 결국 산지브의 직장 동료들이 집들이 왔을 때 기독교 물건을 발견하고 부부에게 기독교인이냐는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트윙클은 자신들은 기독교가 아니지만 집에 기독교 물건들이 있어 찾는 족족 전시하고 있다고 말하고 급기야 이에 흥미를 느낀 손님들을 데리고 다락방에 새로운 물건을 찾아나서기까기 합니다. 결국 그녀는 아주 큰 얼굴 모양의 석상을 찾아냈고 이것을 거실에 전시합니다. 산지브는 이것이 못마땅하지만 트윙클은 곧 자신의 방으로 가지고 갈 것이라며 하루만 거실에 둘것을 부탁합니다.
 
 '축복받은 집'은 산지브와 트윙클의 외적 갈등, 산지브의 내적 갈등을 위주로 전개됩니다. 처음, 해당 작품이 종교적인 갈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트윙클은 단지 기독교 물건이 예뻐서 전시하고 싶었을 뿐 다른 종교적인 의도는 비추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트윙클을 왜 그렇게 기독교 물건을 고집했을까요? 아마 그 이유는 고향에 대한 향수라고 생각합니다. 트윙클과 산지브는 만난지 4개월밖에 안된 부부입니다. 첫만남 이후 2개월만에 결혼했고 결혼한 지 2개월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고향을 떠나 타지로 왔으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타지에 대한 낯섦을 느꼈을 것이고 그것이 원래 이 집에 남아있던 물건에까지 투영되며 자신이 고향을 떠나온것 처럼 물건도 집을 떠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감정이 증폭되며 산지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물품들을 고집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중간중간 등장하는 산지브의 독백은 작품이 부부간의 외적 갈등만이 아닌 산지브의 외적 갈등도 함께 다루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산지브는 결혼 이전 어머니에게 받았던 맞선 상대들의 사진을 떠올리며 트윙클의 특이 행동에 대해 생각했고, 어머니가 골라준 맞선 상대, 즉, 적당히 평범하고 조신한 사람과 결혼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또한 자신의 아내 트윙클에 대해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조건을 가진 여자라고 생각하며 결혼 생활에 대해 무감각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산지브의 내적 갈등을 비록 직접적인 행동으로 이루어지진 않았으나 '축복받은 집'이라는 제목에 비추어본다면 상당히 역설적인 상황을 표현하고 싶지 않았나 생각이 들긴 합니다.
 
 '축복받은 집'이지만 사실상 그 집에서 나온 물건들로 인해 트윙클은 향수를 느끼고 있고 산지브와 갈등을 빚고 있고 심지어 산지브는 기독교인으로 오해받기 싫다는 큰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황상 그 집에서 나온 물건은 저주에 가깝지만 역설적이게 축복이라고 표현하며 임팩트를 남깁니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상황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일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나 전체적인 에피소드를 아우러 보았을 때 오히려 이렇게 갈등을 빚고 차이를 만들고 부부 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지만 이것이 언젠가는 '축복'으로 작용될수도 있다는 긍정적 미래를 암시할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지금의 상처가 미래의 축복이 될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 것 아닐까 하는 해석을 해보았습니다. 

 

 마지막 아홉 번째 에피소드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입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주인공은 총 세 곳의 대륙을 거치며 미국으로 정착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이민자의 삶을 다룬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신혼부부였고 당시 아내와도 아직 편안한 사이가 아닌, 약간은 어색한 사이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집을 구하기는 어려웠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한 집에 머물게 됩니다. 그 집에서 주인공은 백세가 넘은 노인을 만나기도 하며 다양한 경험을 합니다. 그 노인은 1866년부터 살아왔기에 달에 사람이 착륙했다는 소식을 듣고 상상조차 못한 일이라며 놀라곤 합니다. 시간이 흘러 주인공은 그곳에 정착했고 어색했던 아내와도 어느새 편안한 부부로 자리잡게 됩니다. 둘 사이에는 아들도 있어 주인공이 첫 이 땅에 와서 살았던 곳을 지나갈 때마다 아들에게 그 추억을 회상시켜주곤 합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세 대륙을 횡단하며 치열하게 살았던 젊은 날을 생각하며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고 이야기의 주된 요소 중 하나가 이민자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민자들의 삶, 타인의 삶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또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이민자를 기반으로 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품 전반의 시대상 배경은 1960-70년대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세계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시대였고 정착하지 못했던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인공도 정착을 위해 세 대륙을 떠돌았던 것이 아닐까요. 당시 시대를 반영하며 치열하게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마지막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 주인공은 아들이 좌절할 때마다 '이 아버지가 세 대륙에서 살아남은 것을 보면 세상에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언제나 살기 좋은 시대는 없지만 우리 윗 세대, 윗윗세대들과 비교해본다면 2024년 현대 사회는 그래도 살기 좋아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런 시대까지 도달하기 위해 했던 노력과 분투, 치열했던 선조들의 과정을 느낄때마다 이름도 모르는 그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습니다.


 
 축복받은 집은 공통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