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영화리뷰] 괴물 (쿠로카와 소야, 히이라기 하나타 주연)

혜랑랑 2024. 1. 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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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정신없는 연말을 보내고 조금 늦게 오게 되었네요.
벌써 2024년이라는게 믿기지 않지만 그래도 올해는 조금 더 열심히 티스토리 업로드하고 더 다양한 글을 쓰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가져온 작품은 '괴물'입니다.
사실 한국에 너무 유명한 작품과 동일한 제목이라 조금 헷갈리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이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영화를 보러 갔었었는데 저도 무의식중에 송강호 분이 주연으로 활동하신 괴물을 생각하고 영화 초반에는 혹시 재난 영화인가? 하고 경계하면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결론적으로 한국 영화 괴물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일본 영화 괴물이었습니다.
 

 
영화에는 주인공으로 어린 아이 두 명이 등장합니다.

 한부모 가정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오리의 아들 미나토와 그의 같은 반 친구 요리입니다. 미나토는 언젠가부터 어머니에게 자신의 뇌가 돼지의 뇌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며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에 걱정이 된 어머니는 미나토에게 말의 근원지를 다그쳤고 이에 미나토는 자신의 담임 선생님인 호리 선생님이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으며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뉘앙스도 덧붙힙니다.

 학교로 찾아간 미나토의 엄마는 정황을 따져물었으나 이때 교장 선생님 등 다른 교사들은 이 사건을 덮으려고만 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학교의 태도에 화가 난 사오리는 많은 노력 끝에 호리 선생님을 사퇴시키고 이 일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그러나 사오리의 시선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앞선  상황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사실 호리 선생님은 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도시에 화재 사건이 있던 날 늦게까지 거리에 있었던 아이들의 귀가를 걱정하기도 하는 평범하게 아이들을 아끼는 선생님이었습니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호리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유독 이러면 남자답지 못해~ 등의 말을 자주 했을뿐입니다. 남자 아이들이 힘을 쓰지 못하거나 쿨하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 아이들을 놀리듯이 해왔던 말입니다.
 
 미나토는 모종의 이유로 따돌림 당하고 있는 요리와 우연한 기회로 친구가 되고 둘은 학교 밖에서 만나며 우정을 쌓아옵니다. 하교 후 그들의 아지트인 더이상 운행하지 않는 기차에서 놀며 조금 특별한 우정을 이어나갑니다.
 
 그러던 어느날 요리는 이제 이 동네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 간다고 하고 이에 미나토의 감정이 요동치며 미나토는 요리에 대한 감정이 단순히 친구의 감정만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감정을 깨달은 미나토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하고 그 과정에서 자른 머리와 다친 코 등 이상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요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호리 선생님의 탓으로 모든것을 돌려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뇌는 돼지의 뇌로 이루어져 있다는, 미나토가 했던 수상한 말의 정체는 사실 요리의 아버지가 요리가 동성애자인것을 알고 했던 말이었습니다.
 
 태풍이 오는 날, 미나토는 갑자기 집에서 사라집니다. 둘만의 아지트인 기차로 간 것입니다. 그 곳에서 요리와 미나토는 다시 태어나야 할까? 라는 물음을 가지고 있었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태풍이 가고 날이 맑게 개자 둘은 해맑은 표정으로 뛰어놀며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영화를 본 후 마찬가지로 몇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1. 왜 호리 선생님이어야만 했는가?
2. 퀴어 소재를 사용한 이유가 무엇일까?
3. 작가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4. 완벽하게 선한 인물이 있을까?
 
많은 의문점이 있었으나 위의 4가지 의문점이 가장 주된 의문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호리 선생님이어만 했을까?


 
 호리 선생님은 앞서 언급했듯 아이들에게 특별한 적대심을 가지지도, 폭력적인 행동을 행하지도 않은 아주 평범한 교사였습니다. 그러나 미나토의 말과 요리의 거짓 증언으로 호리 선생님은 한순간에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언론에까지 보도되며 결국 직장과 사랑하는 여자친구마저 잃게 되는 인물입니다.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은 왜 호리 선생님을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아넣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며 미나토의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던 감정선과 사회적 분위기, 호리 선생님의 남성다움을 강조하는 말이 미나토와 요리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었다는 것. 모두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죄 없는 교사를 궁지에 몰고 결국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을 정당화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되려 호리 선생님은 미나토에게 좋은 교사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나토가 요리를 위해 거짓으로 난동을 부릴 당시, 호리 선생님은 미나토를 진정시키는 과정에서 미나토를 팔꿈치로 쳐 코피를 내긴 했지만, 미나토를 무조건적으로 나무라거나 이상 행동을 보인다고 하여 감싸는 것이 아니라 미나토가 진정됐다는 것을 확인한 후 이는 아이들 모두에게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는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아이들에게 사과하라고 하며 올바른 행동과 잘못된 행동을 알려주는 방향으로 지도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요리의 신발 주머니를 주워주고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 와중에도 그들의 안위를 생각했던 모습을 보면 호리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몰락할만한 캐릭터는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나토가 자신의 이상 행동의 이유로 호리 선생님을 지목한 이유는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먼저 미나토가 호리 선생님에게 개인적인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경우입니다. 호리 선생님은 평소 ’그건 남자답지 못해’등의 농담을 많이 했습니다. 체육 시간, 사람 탑 쌓기 활동을 할 때에도 아래층의 미나토가 무너지자 남자가 아니라며 놀리곤 했습니다. 이 말이 미나토에게 자칫 상처가 됐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리 선생님의 말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미나토, 그리고 아직 뚜렷한 가치관과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은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하기에는 시대착오적이고 적절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미나토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호리 선생님은 그저 적절한 미끼였을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 어린 나이이며 아직 올바른 판단력이 서지 않은 나이입니다. 이맘때의 아이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회피하려 거짓말을 하기도, 이기적으로 굴기도 합니다. 즉, 미나토는 자신의 이상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충동적으로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과 매일 마주하고 이 상황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인물을 무의식적으로 생각해내 순간적으로 말을 지어냈을 확률이 있습니다. 항상 가는 학교의 아이들보다 힘이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개연성이 충분해 누구나 그럴듯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내용을 종합해봤을 때 미나토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아마도 첫 번째 이유와 두 번째 이유가 함께 작용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요리가 거짓 증언을 한 이유는 첫 번째 이유가 크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요리는 진작에 본인의 성 정체성에 대해 깨닫고 있었고 이 때문에 아버지에게서부터 ‘돼지의 뇌’라는 말을 들으며 학대받고 있었으며 친구들 사이에서도 따돌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밝아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심각한 아동학대와 학교 폭력에 노출된 아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요리에게 호리 선생님의 아무것도 모르는 말들은 상처가 될 수 있고 그것이 결국 잘못된 방향의 응징으로 돌아왔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솔직히 일반적인 어른의 시각에서 거짓과 날조로 타인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요리와 미나토의 행동이 처음에는 이해 되지 않았습니다. 이기적이고 완전히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했고 이 생각은 아이들을 이해하는것과 별개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기에, 아직 판단력이 흐리고 보호가 필요하고 올바른 길로의 지도가 필요한 어린이이기에 이런 행동도 허용되고 이해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법적으로 촉법소년은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문제는 여러 악용 사례를 낳으며 비판받기도 했는데요, 물론 그 아이들의 행동은 잘못될 것이 맞고 다시는 그런일이 일어나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 영화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로 아이들의 잘못을 묵인해 주는 것은 아마도 국가로서, 어른으로서 미성년자에게 행하는 최소한의 자비와 보호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 또한 우리는 회피할 수 없으니까요.

 

퀴어 소재를 사용한 이유가 무엇일까?


 영화 괴물은 퀴어 소재 이외에도 아동학대, 학교폭력, 한부모 가족이라는 다양한 트리거 소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메인으로 다루는 소재는 아무래도 미나토, 요리의 퀴어 소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 영화에 퀴어적 요소를 넣었는지, 그리고 예민하게 작용할 수 있는 퀴어 소재를 왜 아이들을 주연으로 촬영했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지극히 단편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으로 처음 영화에서 동성애적 요소를 마주했을 때, 아이들을 대상으로 예민한 소재를 끌고 와도 될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실재 주연으로 활약한 두 배우는 각각 2009년생, 2011년생으로 만 16세 정도를 웃도는 나이였기 때문입니다.

 감독은 촬영에 앞서 출연자에게 해당 분야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연출측에 있어서도 아이들로 퀴어 소재의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다소 부담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이 영화를 만든 이유를 짐작하자면 아무래도 청소년이 아이들을 주연으로 앞세워 청소년기 학생들의 혼란과 혼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자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퀴어 소재는 최근 생각보다 흔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책이나 드라마, 영화에서도 직접, 간접적으로 종종 얼굴을 비추고 있습니다. 이전 음지라고 여겨졌던 동성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확산되면서 점점 이 퀴어 요소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으로 시작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소위 말해 쉬쉬되고 숨어들어야만 했던 사회 분위기에 비한다면 적극적으로 이런 이슈를 밖으로 꺼내고 공론화하여 갑론을박을 따지는 지금의 사회 분위기가 많이 개방적이고 발전적이라고 여겨질 수 있겠습니다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들의 입장에서 한없이 타인인 사람들 즉 이성애자들이 그들의 생각과 삶을 주제화하고 일반화하고 문제화시켜 해결하고 교훈을 주려 하는 모습이 과연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소수가 다수를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을 의뭉스럽게 여기는 세상에서 다수는 소수에 대판 평가의 잣대를 너무 쉽게 들이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글쎄요… 영화를 본 후 이 영화의 교훈이 뭘까. 하고 싶은 말이 뭘까에 대해 정의내리기 쉽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영화에 꼭 교훈이 있어야할까? 라는 의문을 표하며 제 말에 답해주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모든 상황과 작품과 말에 교훈이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것에서 교훈을 찾으려다보면 오히려 교훈을 놓칠수도 있고 억지로 잘못된 교훈을 찾으려 내 시간을 낭비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작품의 작가와 감독이 그냥 심심해서 이런 작품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그들의 의도와 목적을 헤아려본다면, 먼저 작품 주연들을 아이들로 설정한 만큼 청소년기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방황들을 그려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작중 인물들은 각각 한부모 가정, 성 소수자, 학교폭력 피해자, 누명을 쓴 억울한 사람 등 사회적으로 약자에 해당하는 인물들로 묘사됩니다. 이들은 아들, 정체성, 일자리, 우정 또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나아갑니다. 아마 작가는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을 그리며 이들의 아픔과 삶의 분투 방황과 해답의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아닐까요?
 
 나아가 호리 선생님, 미나토, 요리, 사오리 모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착하거나 나쁘지 않은 이웃, 혹은 나일수도 있는 사람들을 그려냄으로써 이들의 행복과 절망, 슬픔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도 언제나 닥칠 수 있는 문제임을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다수는 언제나 소수가 될 수 있고 주류라고 생각하지만 한순간의 사건으로 비주류가 될 수 있는, 우리라고 생각했지만 우리 또한 언제든 그들이 될 수 있는 그런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는 경고일수도 포용일수도 있다고 느꼈습니다.
 

 

완벽하게 선한 인물이 있을까?

 작품 제목인 괴물에 해당하지 않는 등장인물이 있었을까? 진정한 괴물은 누구일까? 이런 의문에서 시작된 마지막 질문입니다. 작품의 주된 인물은 미나토, 요리, 미나토의 어머니인 사오리, 호리 선생님 그리고 교장 선생님입니다. 교장 선생님은 이번 질문에 답을 하며 처음 등장했는데요. 그녀는 최근 사고로 손녀딸을 잃는 안타까운 일을 겪었고 호리 선생님의 일을 조용히 덮고자 하는 인물입니다. 마지막 혼란스러워하는 미나토를 품어주며 따뜻한 면모를 보이지만 작품에서 가장 괴물에 가까운 사람은 교장 선생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학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교사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하는 인물, 학교를 위해 교사 한 명을 희생시키는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심지어 호리 선생님은 사오리가 처음 찾아갔을 당시 자신이 오해를 모두 설명하겠다고 하지만 이를 거절하고 멋대로 사건을 덮으려다 일은 더욱 커져버렸고 결국 그 모든 책임은 호리 선생님이 지고 불명예스러운 퇴직을 당했습니다. 구성원을 지켜주지 못하는 책임자, 조직을 사람보다 우선하는 보스가 얼마나 무능한지 몸소 보여주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 부분 교장 선생님은 거짓말을 했다는 미나토에게 후 불고 날려버리라는 조언을 하며 따뜻하게 품어주었지만 이 장면 또한 교사로서는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장 선생님은 호리 선생님의 무고함을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호리 선생님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미 무책임한 교사이자 상사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나토 본인조차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지금이라도 이를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불어버리라는 조언을 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사건을 뒤집을 의도가 없다는 것을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까지 위선을 떨며 학교만을 위하는 모습으로 비춰졌기에 미나토에게 다정하게 대했다고 해서 교장선생님의 행동이 정당화되거나 좋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교장 선생님과 미나토가 악기를 불며 노닥거리고 있을 때 호리 선생님은 옥상 위에 서있었다는 점은 평화로운 장면과는 반대되는 모순으로 작용합니다.
 
 누구보다 아들을 위했던 사오리의 감정선만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는데 사오리는 사건의 정황을 몰랐으며 남편을 잃고 홀로 미나토를 키우며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한 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오리는 학교에서 경우 없이 굴지 않았으며 이후 이어진 요리의 증언과 아이들의 설문으로 호리 선생님의 잘못을 확신하고 일을 키운 것이기에 사오리에게 잘못이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오리도 호리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에게는 괴물로 비춰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짧게 나왔지만 호리 선생님의 여자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결혼까지 생각하던 연인이었지만 호리 선생님이 곤경에처하자 여자친구는 한순간에 호리 선생님에게 괴물이 되어 버립니다. 호리 선생님 반 아이들도 선생님과 사이 좋게 지냈지만 무서운 분위기가 조성되자 설문에 호리 선생님에게 불리한 대답을 하며 괴물이 됩니다. 모두 누군가에게는 옳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세상에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이런 면모가 내포돼있을수도 있습니다.
 

 
 작품을 보며 그저 재밌는 감정보다는 의문이 많이 남았고 살짝은 불편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많은 생각을 했고 또 많이 얻어가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태풍이 가고 두 아이가 뛰어가며 다시 태어날 필요 없다며 본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분명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의 방황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그들이 더이상 본인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정체성과 가치관을 설립해나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의 영상미 또한 환상적이었습니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성장 소설적 면모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성장하고 깨달은 만큼 본인의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감 또한 자각했으면 좋겠다고 여겼습니다. 약자와 소수는 책임감을 버릴 어떤 이유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희생당한 호리 선생님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고 추후 교장선생님의 위선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일본 영화 특유의 관점 전환이나 절제된 분위기를 좋아하신다면 추천할만한 영화입니다. 그것과 별개로 영화를 보고 논쟁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생각할거리가 많은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리 가벼운 영화는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와서 말이 조금 길어졌네요. 그럼 다음에는 아마도 도서 리뷰로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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